최근 포토로그


영국 경찰과 프랑스 경찰의 시작은 어떻게 달랐을까 역사

영국인들은 권위주의를 싫어해요. 
전통은 좋아하지만 권위는 싫어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정확히는 정부가 간섭하는 걸 안 좋아하죠. 


때문인지 중세 영국엔 오랫동안 경찰이란 게없었는데 만약 강도나 도둑이 들면 해결책은 두 가지였어요. 

소리 지르기 or 10인대 

소리 지르기는 모두가 이해하셨을 거예요. 누군가 "강도야!"라 소리 지르면 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강도를 때려잡는 거죠. 

못 들으면? 










10인대는 조금 생소하실 텐데. 이는 티(Tything)이라 불렸어요.

ty+thing 직역하면 10개란 뜻의 이 고대 영단어는. 12살 이상의 성인 남성(과거엔 성인의 기준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죠 12살이면 어른임) 10명이 모여 상부상조하며 치안을 담당하는 제도였죠. 10명은 서로를 감시하며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힘을 합쳐 체포해야 했는데. 이를 어기면 연대 책임을 물어야 했어요.

10세기 등장한 티싱은 오래가지 않아 외지인의 침략으로 인해 변화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덴마크인 크누트 대왕 두 번째는 프랑스의 정복왕 윌리엄이었어요. (영국을 정복하면 대왕이나 정복왕 명함을 얻을 수 있음)

크누트는 10인조를 100명으로 늘렸고 이는 당시엔 Frith-borh (평화의 보증) 후대엔 프랭크플레지(Frankpledge)로 불리게 돼요.

왜 프랑크냐고요? 프랑스에서 온 정복자 때문이죠.


영국을 정복한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연고가 없던 섬나라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평화의 보증 제도를 이용했는데 그는 이 100인대에 프랑스식 봉건 시스템을 삽입했어요. 

주민 10명을 모아 100인대를 만들고 100인대에 대장이자 치안 관인 컨스터블(이는 고대 로마의 마구간 관리인, 이후 중세 프랑스에선 영주의 기병 대장이었는데 1032년부턴 왕의 무관장으로 사법과 군대를 담당하는 직책이 되었죠.) 을 왕이 지정하고, 그 100인대를 여럿 모아 샤이어를 만든 다음 샤이어의 대장을 샤이어 리브 (Shire reeve)라 불렀죠.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면 맞아요, 이는 이후 셰리프(보안관)가 되는 명칭이에요. 


컨스터블 - 왕이 임명한 100인대의 대장이자 치안관


프랑크플레지의 멤버들은 자기들 중 누군가가 죄를 짓는다면 그의 도주를 돕지 않겠다 보증했고 이를 어기면 자신의 재물로 배상했어요. (영미법의 뿌리 깊은 금전적 배상)

이제 중세 영국은 행복했을까요?

아뇨 어떻게 보증을 섰는데 행복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전 국민이!




이후 프랭크플래지는 200년 넘게 지속되었지만 결국 연대보증 제도는 주민들을 억죄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어요.
이건 치안기관도 뭣도 아니었고. 재판은 원님 마음대로, 범인은 안 잡히면 그만. 

프랭크플래지가 치안 제도로써 제 기능을 못하자 에드워드 1세는 1285년 프랭크플래지를 폐지하고 새로운 치안 법령인 에드워드 법령을 발표했는데 이는 도시의 경비와 야경을 다룬 법령이었어요.

크든 작든 영국의 모든 도시엔 야경꾼이 순찰을 해야 했고 15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남성은 집에 무기를 배치해 필요시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을 도와야 했죠.

이 에드워드 법령은 영국 경찰의 전신으로 불리며 1829년 수도경찰청이 창설될 때까지 자그마치 500년 넘게 유지되었는데 말만 경찰대의 전신이지 한마디로 치안을 주민에게 일임한 형태였어요.

현대적 전문 경찰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시스템이었죠. 

런던의 야경꾼 - 상태 안 좋음




이는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대원수인 마레슈시와 Maréchaussée. 대무관장인 코네타빌 Connétablie이 왕의 부하로써 좀 더 전문적인 치안을 담당하던 것과 비교되는데 저 둘은 단순한 치안 단체가 아니라 군대였지만 어찌 되었든 '치안도 담당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집단'이었어요.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복자(?)이 자 르네상스 왕 프랑수아 1세 때 마레슈시는 코네타빌에게 흡수되었고 
이때 군사적인 색채를 크게 잃고 치안조직으로써 정체성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최초의 비밀경찰이기도 해요.
왕의 비밀경찰들은 곳곳에 숨어 왕께 불충한 무리나 신교도들을 색출해 학살하는데 큰 공을 세웠죠.
이 비밀경찰들은 여러 의미로 모범적인 게슈타포의 선배들이었어요.

"폐하,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3명 중 1명은 우리 비밀경찰입니다"

앙투안 데 사틴 (Antoine de Sartine)
루이 15세의 경찰 국장 (lieutenant général de police)





여하튼 마레슈시는 1720년엔 왕실 근위대인 장다마리와 합쳐진 뒤 1779년 한 번 더개편을 겪었고 완벽한 치안유지 기관이 되었지만 대혁명 때 혁명을 진압하다 미운 털이박혀 혁명정부에 의해 해산 된 뒤 치안의 부재를 실감한 혁명 정부에 의해 지금의 1791년 부활해 국가 헌병대(gendarmerienationale)가 되었죠.. (현대 프랑스 경찰과 국가 헌병대는 또 서로 별개의 조직이지만 거기까지 다루면 글이 너무 길어짐으로 언젠가 다루겠어요)


대혁명기 프랑스 국가 헌병대 
군대 같지만 경찰입니다. 근데 군대임.
 험한 세상이었으니까요.


현대 영국도 군인같은 무장 경관들이 순찰을 돌죠.
험한 세상..



사람들이 흔히 최초의 현대적 경찰로 영국의 수도 경찰을 떠올리는 건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순수하게 치안만을 담당하는 최초의 조직이기 때문인데, 사실 1720년 혹은 1791년 창설된 프랑스 국가 헌병대 또한 분명한 경찰 조직이었어요. 18세기 내내 프랑스와 영국 모두 이들을 POLICE라 지칭했죠. (나폴레옹 전쟁 시기 수많은 영국 스파이들을 콩밥 먹인 이들을 도대체 누가 경찰이 아니라 하나요) 심지어 중세기 마레슈시 또한 영국에 비하면 상당히 전문적인 사법 집단이었는데 

프랭크플레지와 에드워드 법령으로 사실상 경찰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던 중세- 르네상스 영국에 비해 동시기 프랑스는 도시부터 한적한 농촌까지 치안이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어요. 물론 근대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구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인들은 이런 프랑스 경찰을 '외세의 상징' '억압과 폭군의 상징'이라부르며 두려워하고 조롱했죠.
이들에게 경찰은 곧 왕의 수하였고 이는 민주주의의 종말이었거든요.
때문에 경찰 창설에 대한 요구는 오랫동안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영국 의회는 거품을 물고 반대했죠.
물론 프랑스제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반대를 외치는 국민성 때문 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구가 불어난 영국의 범죄는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폭등했고 
영국 전역이 범죄로 헬게이트가 되자 의회는 결국 1829년 뒤늦게 런던 경찰을 창설하는데 동의했죠.



All Along The Watchtower

지금보다 이 노래가 더 잘 어울리는 시기가 있을까.




광대가 도둑에게 말했지
분명 여기서 벗어나는 어떤 방법이 있을 거야
여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여유를 가질 길이 없어

사업가들, 그들은 나의 와인을 마시지
농부들은 나의 땅을 파헤치고
줄을 선 사람 중 누구도 그 가치를 모르고 있어

도둑이 상냥히 말했지
흥분할 필요 없어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인생이 단지 농담이라 느끼거든
하지만, 아 그래 하지만 우린 산전수전 다 겪었잖아?
시간이 너무 늦었어
그러니 우리 이제 거짓된 이야긴 나누지 말자
탈출은 우리의 운명이 아니야

모든 감시탑에서
왕자들은 여인의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네
맨발의 시종들도,
저 멀리 어디선가 야생 고양이가 울기 시작하고
두 명의 말 탄 자가 다가오며
바람은 울부짖기 시작하네



사이공 최후의 순간들 역사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군대 철수를 계속하며, 만약 북베트남이 파리 협정을 깨고 남베트남을 침공할시 즉각 군대를 파병해 남베트남을 구원하겠다 거듭 약조, 천명했죠.

하지만 키신저의 약속과 문서들은 그냥 종이조각일 뿐이었음.


월가의 악마 엘리엇 역사

경제에 관심 있는 분이시라면 폴 싱어, 아니면 헤지펀드 엘리엇이란 이름을 여러 번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들의 이름이 경제 뉴스에 아주 빈번하게 등장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마수를 뻗은 적이 있기에 저 둘은 그렇게 낯선 이름이 아니죠. 그런데 저 둘이 왜 유명하냐구요?

접촉했던 모든 사람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는 자(회사)가 있었다면 그건 당연히 폴 싱어와 엘리엇이었으니까요. 





80년대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이 연달아 국가 부도 사태를 겪고 외채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이들을 구제해 줄 방안을 만들었어요. (유구한 남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은 베네수엘라가 맛이 가버렸죠)

89년 니콜라스 브래디 미 재무부 장관의 이름을 딴 브래디 구제안은 남미 국가들의 채무를 재조정하는 거대한 패키지였는데 이 브래디 패키지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남미 국가들의 채무를 상당 부분 탕감해 주는 것이었어요.

당시 다른 남미 제국과 마찬가지로 페루도 심각한 곤란에 빠져 있었는데 국가 파산 사태가 벌어지자 당연히 페루 국채도 부도채권이 되어 폭락했고 브래디 프로젝트가 아니면 페루는 도저히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뉴욕 월가엔 이렇게 폭락한 부도채권들을 사들여 비싸게 보상받아 파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이 있는데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이용해 큰돈을 버는 자들이라 할 수 있죠.

그 하이에나의 선두주자가 바로 헤지펀드 엘리엇이었고 그 CEO인 폴 싱어는 업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투기꾼이었어요. 싱어는 기업이나 국가의 비전, 잠재력, 가능성보단 약점, 아픈 곳을 집요하고 치밀하게 찾아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는 브래디 패키지의 소식을 듣자마자 폭락한 페루의 국채를 액면가의 절반값인 천백사십만 달러로 사들였죠. 

왜 부도 채권을 잔뜩 사들였을까요? 
페루가 이 채권에 이자를 지급할 능력도 의지도 없단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사실 그걸 노린 일이었죠..



명부상의 이자가 천문학적으로 쌓이고 페루가 브래디 구제를 신청하자 그는 페루 정부에게 자신이 산 페루 국채의 이자를 모두 포함해 5천8백만 달러를 토해내라는 소송을 걸었죠. 
물론 자신의 돈을 값지 않으면 브래디 패키지를 실행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협박도 함께.


"안데스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지불 불능에 빠진 정부가 내 돈을 먹튀하려는데 이거 보고만 있을 거야?"


이딴 소송이 먹혔을까요?


네, 놀랍게도 뉴욕 법원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었고 페루는 눈물을 흘리며 5천8백만 달러 전액을 갚아야 했고 엘리엇은 5배에 가까운 폭리를 취했어요.


이후로도 엘리엇은 어려움에 빠진 여러 국가와 기업들을 대담히 드나들면서 그들의 고통을 조롱했는데 아프리카의 기아가 극심할 때 선진국들이 돈을 모아 아프리카에 자금 지원을 한단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고 역시나 이자를 포함한 막대한 돈을 값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막겠다 협박해 무자비하게 돈을 뜯어냈죠. 그에겐 기아에 빠져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보다 자신의 돈놀이가 더 중 했던 것 같아요.


엘리엇의 행보가 꽤 타락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싱어는 자신의 행동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 같아요.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가난한 이들을 착취해 돈을 버는 월가의 부도덕한 악마'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자가 없다 해도.

한 아이리쉬 레드코트의 이야기



A recruiting sergeant came our way
From an inn near town at the close of day
He said my Johnny you're a fine young man
Would you like to march along behind a military band
With a scarlet coat and a fine cocked hat
And a musket at your shoulder
The shilling he took and he kissed the book
Oh poor Johnny what'll happen to ya?
날이 저물던 때 마을 근처의 여관에서 모병관이 우리 앞에 나타났지 그는 말했어 

" 쟈니, 이 훌륭한 친구! 자네 군악대를 따라 붉은 제복과 훌륭한 군모를 쓰고 행진하고 싶지 않나? 머스킷을 어깨에 메고말야." 

그는 동전을 받고 책에 선서의 키스를 했어
불쌍한 쟈니 무슨일이 있던거야?


The recruiting sergeant marched away
From the Inn near town at the break of day
Johnny came too with half a ring
He was off to be a soldier to go fighting for the King
In a far off war in a far off land
To face the foreign soldier
But how will you fare when there's lead in the air
Oh poor Johnny what'll happen to ya?
날이 밝을 때 마을 근처의 여관에서 
모병관이 행진해 사라지고
쟈니도 볼품없이 따라갔지
그는 왕을 위해 싸우는 병사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 거야
멀고 먼 땅에서 
외국의 병사와 마주하기 위해 말이지.
하지만 총알이 날아다니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불쌍한 쟈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Well the sun rose high on a barren land
Where the thin red line made a military stand
There was sling shot, chain shot, grape shot too
Swords and bayonets thrusting through
Poor Johnny fell but the day was won
And the King is grateful to ya
But your soldiering's done and they're sending you home
Oh poor Johnny what'll happen to ya?
황무지에 선 레드코트의 전열 위로 태양이 붉게 떠올랐지
슬링샷 체인샷 포도탄이 날아들고
검과 총검이 내질러지고 
불쌍한 쟈니는 쓰러졌지만 전투는 이겼다네
왕께서 네게 고마워할 거야
하지만 네 군 복무는 끝나고 그들은 널 집으로 보낸다네
불쌍한 쟈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They said he was a hero and not to grieve
For the two ruined legs and the empty sleeve
They took him home and they set him down
With a military pension and a medal from the crown
But you haven't an arm, you haven't a leg
The enemy nearly slew ya
You'll have to go out on the streets to beg
Oh poor Johnny what'll happen to ya?
그들은 그가 영웅이라 말했지만
날아간 두 다리와 사라진 팔에 대해선 슬퍼하지 않았지
그들은 그를 집에 데려가 눕혀놓았어.
군 구빈원에 훈장과 왕관과 함께 말이지.
하지만 넌 팔이 없어 다리도 없지
적이 널 아주 끝장냈거든
넌 거리로 구걸하러 나가야 해
불쌍한 쟈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O Polly love, O Polly, the route has now begun
And we must go a-marching to the beating of a drum
Come dress yourself all in your best and come along with me
I'll take you to the cruel wars in High Germany
폴리 사랑하는 폴리 행군이 시작되었어
그리고 우린 북소리에 맞춰 행군해야 해
예쁘게 차려입고 나에게 와서 함께 가 줘
널 고지 독일의 잔인한 전쟁으로 데려다줄게

O Harry, dearest Harry, mind well what I do say
My feet they are so tender and I cannot march away
Besides, my dearest Harry, I am with child by thee
Not fitted for the cruel wars in High Germany
해리 소중한 해리 내 말을 잘 들어요
내 다리는 너무도 부드러워서 난 행군할 수가 없어요
소중한 해리 게다가 난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난 고지 독일의 잔인한 전쟁에는 맞지 않아요.

I'll buy you a horse, my love, and on it you shall ride
And all of my delight shall be walking at your side
We'll stop at every alehouse and drink when we are dry
Be true to one another, get married by and by
당신을 위해 말을 살게 내사랑, 당신이 탈 말을.
당신 곁에서 걷는 건 내 기쁨일 거야
우린 모든 술집에서 멈춰 서 마실 테고
서로에게 진실하고 머지않아 결혼하겠지.

O cursed be the cruel wars, that ever they should rise
And out of marry England, press many a man likewise
They took her Harry from her, likewise her brothers three
And sent them to the cruel wars in High Germany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잔인한 전쟁에 저주를
그리고 영국 밖에 많은 사람들이 징병되었다네.
그리고 그녀의 세 형제처럼 그녀에게서 해리마저 빼앗아가 버렸지
그리고 고지 독일의 잔인한 전쟁터로 보냈다네.

----------------------------------------------------------------
대영제국의 자랑 레드 코트는 표트르 대제의 병사나 왕의 수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았어요.
그 대우는 포탄 밥이 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유럽의 어느 왕국도 자신의 병사들을 신경 써서 다루지 않았죠.
강제로 끌려왔든 알량한 속임수에 넘어가 입대했든,
부상당한 자들의 말로는 왕립구빈원이나 길거리의 거지가 대부분이었어요.

퓨질리어

흔히 거장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 일수록 장비에 신경쓰기 마련이죠.
이는 전쟁에도 마찬가지라 돌도끼와 청동기를 거쳐 인간은 쉴새 없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경쟁에서 우위에 서거나 최소한 뒤쳐지진 않으려 했어요.

그 경쟁의 결과로 등장한 머스킷의 완성판이 바로 플린트락 머스킷, 프랑스어로는 퓨지 아 실렉스(fusil à silex), 한자로는 수발총이라 이라 불리는 총이죠.


17세기 프랑스에서 발명된 이 획기적인 무기는 총의 명중률과, 화력, 조작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고 소켓형 총검의 장착으로 오랜 세월 총병의 천적이었던 기병을 혼내줄수 있었으며 비가 와도 어느 정도 쏠 수 있는 최초의 총이기도 했기에 당시 화승총을 쓰던 동남아의 왕들과 아메리카의 족장들은 너도나도 이 무기를 최대한 구입하려 애를 썼어요.

한마디로 지금 보면 그다지 대단한 물건이 아니었지만 당대엔 군사학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죠.

당시 '퓨질'수발총을 다루던 부대는 당연히 '퓨질리어'라 불렸는데.

한가지 의문점은 똑같이 '퓨질'을 쓰는'퓨질리어'인데 저 단어는 유럽 주요국마다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거에요.

웟더헬?

서점과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는 근대사 교양서와 무나키위 퓨질리어 항목은 어느정도 기본기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지만 도대체 저 세 나라의 퓨질리어가 어쩌다 저런 차이가 났는지에 대해선 대개 침묵하죠.

일단 프랑스에서 퓨질리어는 일반적인 전열 보병을, 영국에선 정예 보병, 독일에선 경보병을 뜻했어요.

왜 나라마다 같은 무기와 같은 이름을 쓰는 부대의 역할이 달라졌을까요?






최초로 수발총을 채용한 국가는 프랑스인데 1670년 야심 차게 시작한 수발총 도입 사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해서 1개 보병 중대에 4자루 씩(...)이 고작이었어요.

유럽의 심장에게도 신무기는 비쌌고 매치락에 만족하던 고리타분한 장교들에겐 수발총이 비싼 장난감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이 신무기의 잠재력을 간파한 높으신 분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보방 원수였어요.



방어전과 요새에만 능했던게 아닌 그는 무리해서라도 수발총만을 쓰는 대규모 부대를 조직하려 했는데. 당연히 이 부대는 정예부대여야 했고 큰 돈과 정예병이 필요한 일인 만큼 '왕의 퓨질리어' Fusiliers du Roi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어요. 




왕의 퓨질리어의 첫 임무는 뜻밖에도 포병대의 경호였는데 전장식 대포는 훗날 한 위대한 미국 북부의 장군에게 '천 개의 라이플과 맞먹는다' 평가받을 만큼 공격력이 강력했지만 그 반 비례로 느렸고 방어력도 형편없어 적당한 보호가 없다면 적에게 쉬운 먹잇감이 되어버렸고 이건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에요.
흔히 말하는 '유리 대포'는 사실 포병 그 자체기도 하죠.

왕의 퓨질리어가 포병대를 지키게 된 건 그들이 정예부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대포란 게 처음 나온 이후부터 수많은 직업 사수들이 적이 아니라 자기 대포의 폭발로 사망했어요.
그만큼 전장 대포는 위험한 것이었고,포대 주변엔 화약통이 널려있어서 함부로 화승총을 쏘면 불꽃에 화약이 유폭해 포대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참사가 왕왕 벌어지곤 했죠.
그 점에서 불이 필요 없는 수발총은 포대에서도 쏠 수 있는 안전한 무기였고 당연히 포대의 보호는 이들이 담당하게 되었어요.

각종 전쟁에서 수발 총의 위력을 확인한 프랑스는 전 보병대에게 화승총을 버리고 수발 총으로 갈아타란 지시를 내렸고 흔해지면 가치도 사라진다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얼마 안가 퓨질리어는 정예부대가 아니라 '일반적인 보병'을 뜻하게 되었어요.



재미있는 건 영국도 얼마 안가 '왕의 퓨질리어'와 정확히 똑같은 임무의 퓨질리어 부대를 창설했다는 건데1685년 런던 타워를 경비하기 위해 창설된 영국 최초의 수발총 부대인 7 왕립 퓨질리어 보병대 The 7th Foot(Royal Regiment of Fuzileers) 가 곧 The Royal Fusiliers (City of London Regiment) 시티 오브 런던 왕립 퓨질리어 부대로 승격되어 포병대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어요. *시티 오브 런던은 런던시 자체를 뜻하는게 아니라 런던의 중심지인 행정구역을 뜻해요.


유럽의 포병대는 비 전투시엔 민간인들에게 위용을 드러내는 사열대로서의 기능을 했지만 당시 전반적인 인간 목숨의 가치는 존윅이나 킹스맨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때문에 포병대는 여차하면 포신을 돌려 불만을 가진 하층민들에게 발사할 수 있는 헌병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했어요. 때문에 왕립 퓨질리어 부대는 시민들(특히 마차 짐꾼들)과 자주 접촉하며 규율을 보이는 정예 부대로 통했고 덕분에 이들은 척탄병들의 높다란 고깔모자(Mitred Cap)보다 약간 낮은 높이의 고깔모자를 쓸 자격이 주어졌는데, 나폴레옹 전쟁쯤 되면 일반 머스킷티어들의 샤코를 쓰게 되지만 전통에 극도로 집착하는 민족성 때문인지 여전히 독립된 정예 보병부대로 통했죠.

쓰면 키 커보임








가장 예외적이고 남들과 상관없는 케이스는 프러시아인데 18세기 초 프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보다 조금 늦게 이 신무기를 받아들이며 가장 강력한 정예부대인 근위대에게 주어 수발총 근위대(Leibgarde zu Fuss)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은 퓨질리어 부대를 14개로 늘렸는데 이들은 일반적인 머스킷티어(전열보병)의 임무를 수행했죠. 여기까진 프랑스와 비슷하다 볼 수 있는데.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했던 장교들이 속속 귀환해 거기서 익힌 유격전술을 선보이고 1787년 군제 개편부터 프러시아 퓨질리어 점차 녹색 옷의 경보병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하지만 이들의 무기는 여전히 일반 보병과 똑같은 머스킷이 대부분이었어요.

이후 1808년의 새로운 군제 개혁부턴 일반 전열 보병 연대안에 퓨질리어 대대가 3개씩 배속되며 군복 색도 전열 보병과 똑같은 프러시안블루로 변하게 되었는데 일반 보병(?)과 아주 똑같아진 건 아니라 이들은 검은 가죽 크로스 벨트를 차고 전열 보병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탄약대를 장비했어요.


경보병의 자존심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고 이들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1,2차대전때도 퓨질리어란 이름을 쓰는 부대가 존재했죠.



이처럼 전성기(?) 때부터 퓨질리어란 이름은 이들의 임무나 무기보단 전통에 따라 지어진 부대명에 가까웠어요.
때문에 머스킷티어와 레드코트가 사라진 21세기까지도 영국과 프랑스엔 퓨질리어란 이름을 쓰는 부대들이 남아있죠.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