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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평온속에 살고 싶은 자는 아는 것 모두를 말하지도, 본 것 모두를 평가 하지도 말라.
-벤자민 프랭클린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4 역사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을 이야기 할 때 우린 흔히 엘리자베스 2세와 존 레논을 이야기하곤 해요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은 이들을 몰아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어렵겠지만 적어도 영국인들은 답을 내린 것 같아요 

BBC에서 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 처칠에 이어 2위로 들어간 사내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유능한 프랑스 해군 장교의 아들이었던 그는 현대 문명에 필수인 여러 기술을 보급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죠. 

브루넬은 흥미로운 사내였어요 지금까지 설명했던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의 아들이자, 자연이 그에게 이례적으로 내린 천재적 지능 (그는 이공계의 나폴레옹이었죠) 덕에 그는 순수한 사업가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계에 대한 그의 재능과 열정과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혜택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덕분에 그는 스스로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들로 큰 재미를 못 보았지만 (사실 그는 망했어요) 전 세계의 수많은 후배 엔지니어들과 장사꾼들이 그가 이룩한 것에서 영감과 도움을 받아 황금알을 챙겼죠. 

아버지를 도와 템스 터널을 완성하던 1831년 그는 브리스톨의 에이번 강 위를 지나는 현수교의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18세기 말 석제 다리로 지어지려던 계획은 프랑스 혁명 전쟁으로 한번 무산되고 이후 실제 비용이 예상 비용의 10배에 달한다는 게 밝혀지며 철제 현수교로 대체되었고 브루넬은 여기에 4가지의 설계도를 제출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심사위원을 이끄는 토마스 텔포드가 브루넬의 설계도를 기각하고 텔포드 자신의 설계도를 채택하려 한거에요.
어이없는 상황에 브루넬이 항의하자 공청회는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이 되었고 논쟁 끝에 결국 브루넬의 설계도가 채택되었죠. 
브루넬의 디자인은 241M라는 당시 세계 최대의 현수교였는데 그는 장엄함을 사랑하는 사내였고 산업시대는 거대한 게 유리하다 보았어요. 스스로의 설계에 너무도 만족한 브루넬은 친척에게 "내가 세상에 뛰어든 이후로 이만큼 완벽하게 들어맞는 일은 없었어" 라 편지를 썼는데

곧이어 브리스틀에서 폭동이 일어나 사업은 전면 중단되었고 브루넬은 다리의 완공을 보지 못했어요. 

운명: 하하 죽어라 





크게 물을 먹은 데다 (아버지의 데쟈뷰) 아버지의 터널 공사에서 강물이 터져 들어와 상처를 입은 브루넬은 놀지 않고 다른 일에 도전했는데 당시 영국인들의 또 관심사는 런던에서 영국 서부의 엑서터나 브리스틀까지 걷는 것이나 마차보다 더 신속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단인 철도, 대서부 철도였어요. 
왜 남북이 아니라 동서냐고요? 

일단 북쪽엔 얼음밖에 없는 데다 (헤브루디언 제도라던가…)


서쪽엔 대양 건너 미국이라는 엄청난 무역 동반자가 뜨고 있었거든요. 
영국은 기본적으로 무역 국가였고 여러 번 큰 전쟁을 치른 미국은 원수인 동시에 매력적인 파트너기도 했어요. 


시류를 타고 서쪽으로의 철도 부설을 열심히 하던 그레이트 웨스턴 레일 같은 회사에선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고 젊은 부르넬 2세는 회사가 간절히 찾던 천재였죠. 

브루넬 본인도 미래의 운송수단인 철도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승차권 하나를 사 런던에서 뉴욕까지 갈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인생의 비전이 있던 터라흔쾌히 승낙했는데 당연히 회사에선 그에게 영국 대 서부 철도라는 아무나 하기 어려운 임무를 내렸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초기 증기기관차에 오르막은 단순히 귀찮은 요소가 아니라 심각한 방해 요소였는데 힘이 달리는 초기 기차를 위해선 최대한 노선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문제는 런던에서 브리스틀까진 크고 작은 언덕과 계곡이 여러 개란 것이었는데 브루넬은 그동안의 경험과 재능을 이용해 다리와 터널을 놓아 돌파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스 지역에 3KM에 달하는 채석언덕이었어요.
터널이 흔한 지금이야 그게 뭐 어때서? 라 반문할 수 있지만, 당시 증기 기관차가 지나갈 만한 거대한 2.95KM 터널을 뚫는 건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었죠. 
1836년 시작된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는데 서쪽과 동쪽에서 양쪽으로 터널을 뚫으며 만약 오차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기껏 파놓은 터널이 어긋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어요. 

이를 위해 브루넬은 천재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터널이 지날 언덕 위를 지나가며 지하 21m에 직경 7.6m 파일 6개를 박아 증기 기중기로 인부와 자재를 내려보내 6개의 지점에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죠.
이는 터널 내부의 환기에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비록 오차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터널을 뚫는 건 또 다른 문제였는데 전기설비는커녕 등유 불도 없던 시대에 내부를 밝히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였고 모든 작업은 촛불로 이루어졌죠. 

당연히 위험해서 작업 내내 100명이 넘는 인부가 사망했고 브루넬도 여러 번 위험에 빠졌어요 하지만 브루넬은 악착같이 밀어붙였고, 마침내 1841년 6월 30일 터널이 완공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브루넬은 자신의 생일인 4월 9일 날 터널을 완공해 건너편으로 햇살을 볼 수 있게 터널의 위치를 지정했다고 해요. 
한마디로 공적인 일에  낭만적인 사심을 크게 발휘했단 건데 앵거스 뷰캐넌에 따르면 이는 그럴듯하지만 별 근거는 없는 이야기 중 하나라 해요.



브루넬은 서부 철도회사에서 일하며 단순히 영국의 핵심 철길망을 개통한 게 아니라 세 가지 중요한 시도를 했는데 

첫째는 놀라울 정도로 앞섰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망해 사라진 '대기압 열차'에요 
감압 튜브를 이용해 기압 차이로 연기 없이 열차를 빠르게 움직인다는 천재적 발상이었지만 당연히 망했고 개인적으로 왜 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굳이 필요하다 보진 않아요. 일단 당시 기술로는 감압유지부터가 안 되었죠. 


둘째는 대서부 철로의 넓이를 광궤 (2.140mm)로 정한 것인데 지금 많은 나라에서 쓰이는 표준궤(1.435mm) 보다 훨씬 넓은 철로 폭이었죠.


선로가 넓으니 열차도 커요 엄청  

이미 1830년 조지 스티븐슨의 표준궤가 통하던 시기 그가 왜 독자적으로 이런 넓은 철로를 주장했을까요? 
브루넬의 답은 단순했는데 크면 힘도 좋고 힘이 좋으면 빠르고 큰 차가 승차감도 좋더라 말했죠. 
덕분에 영국 서부 철로는 19세기 말까지 대부분 광궤였지만 결국 점차 표준궤로 대체되었어요. 

세 번째는 기존 마을 위주로 선로를 놓던 관례와 다르게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루트로 허허벌판에 철로를 놓은 것인데 
왜 그랬냐는 질문에 브루넬은 역시 두 번째와 비슷한 답을 내놓았죠. 


이렇게 대 서부철도를 이끌며 대영제국을 철도로 연결한 브루넬 

런던에서 엑서터까진 그렇다 쳐도…. 대양은 어떻게 건넜을까요?


엘리트 스쿼드 소감

차기작 준비 때문에 봤는데

"극단의 상황엔 극단의 처방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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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판터 푸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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