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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표 이야기 역사

고대 중국 위나라 때 서문표라는 사람이 '업'이라는 지역의 태수로 부임했어요. 

서문표를 놀라게 만든 건 넓은 강이 흐르는 정경과 그럼에도 쥐 떼 소굴같이 가난한 지역의 풍경이었는데 업은 황하의 지류인 장수가 지나는 곳이라 큰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들어 농민들은 고통받고 삶은 피폐했죠. 

임지에 도착한 서문표는 한번 더 놀랐는데 지역민들이 가뭄과 홍수를 예방한다며 강에 사는 신에게 처녀를 산 제물로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신령한 자연은 인간이 함부로 손 대면 안 되는 것이기에 대신 하백에게 처녀를 '시집' 보내 자연을 달래는 것이었죠. 

젊은 무당들을 이끌고 있는 나이 든 무당과 지역 장로들이 농민들에게 돈을 걷어 제사를 지내고 나머진 자신들이 가졌는데 만약 농민이 돈을 내지 못하면 딸을 제물로 바쳐야 했죠.

무당들을 화나게 만들면 지역에 재앙이 내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역 유지들이 무당들과 결탁해 농민들을 수탈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해마다 햇볕이 잘 드는 강변에 제사판을 차리곤 아무 대답도 없는 물길에 처녀들을 빠뜨리곤 했어요.

이 광경에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은 서문표는 때마침 처녀를 바치는 제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도 참석하겠다 말 했죠.

다음날 제사를 보러 농민들과 호족, 장로들까지 강변에 사람이 바글바글 모이자 장엄한 굿판이 열렸고 무당 무리가 하백에게 시집갈 처녀를 데리고 강변에 나타나 처녀를 강으로 밀어 넣으려는 순간 서문표가 나섰어요.

"하백에게 시집갈 처녀라면 당연히 미인이어야 할 텐데 내가 얼굴을 좀 보겠다"

가까이 가 힐끗 처녀의 얼굴을 본 그는 "이렇게 못생긴 처녀로 어떻게 하백을 기쁘게 하겠는가? 내가 새 처녀를 물색할 테니 무당은 혼례를 며칠 늦춘다고 알리고 오너라!"라 말했고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태수의 병사들이 우루루 달려나가 늙은 무당을 번쩍 들어 강물에 집어던졌어요. (마치 미리 명령이라도 받은 것 처럼!)




예상에 없던 사람이 대신 하백에게 가버리자 모두가 숨죽인채 벌벌 떨며 채 무당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당연히 한참이 지나도 무당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으로 서문표는 젊은 무당들을 가리키며 "노파가 걸음이 느려 늦는 모양이니 젊은 너희들이 좀 다녀와라" 라 말하며 군사들을 시켜 젊은 무당 10명을 모두 강으로 집어던져 버렸죠. 

젊은 무당들도 숨참는 실력이 별로였는지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서문표는"여자들이 소식이 없으니 이번엔 장로들이 다녀와야 하지 않겠소?"라 말하며 장로들까지 물속에 밀어 넣었어요.

시간이 한참 지나 가엾은 노인들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게 확실해 지자 서문표는 탄식하며 
"하백의 마음을 그리도 잘 안다는 자들이 이렇게 소식이 없나? 이제 누가 하백에게 다녀올 것인가?"
라 호통쳤고 그제야 지방 호족들과 아전들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소서"라며 용서를 빌었죠.

이에 서문표는 "강물에 귀신이 살 리 없고 홍수와 가뭄은 사람의 치수에 달린 것이다"
 라 말하며 그날로 농민들을 동원해 12곳에 땅을 파고 수로를 뚫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이전까지 매번 넘치고 가물던 강은 점차 조절되기 시작했고 처녀 공양도 사라지자 미신과 거짓 주술의 긴 암흑 속에서 고통받던 업은 새로운 새벽을 맞이했죠.



고민

북한이 외신 메인에 뜰 때 때마다 이렇게 유명한 세계 최악의 전제국가가 같은 민족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고민 됨

볼테르의 편지 역사

루소: 제가 사회 계약론이란 책을 썼어요! 자 여기 ㅎㅎ 

볼테르: 아.. 네 




루소가 보낸 책을 받아 본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비평을 편지에 담아 보냈어요.



''책은 잘 받았고 감사합니다. 인류를 까는 당신의 새 책은 잘 보았습니다. 
이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 재주를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데 쓰는 건 처음 보네요, 
당신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네 다리로 걷겠어요.. 

지만 전 불행히도 그 버릇을 60년 전에 잃어서요.. 네발로 걷는 건 불가능 할 거 같습니다. 게다가 (고결한)야만인들을 찾으러 캐나다로 가는 배에 오르지도 못하겠네요 제가 저주받을 병을 앓고 있어서 유럽 의사가 필요해서... 

왜냐하면 북미에서 전쟁 중인 거 아시죠 우리의 행동이 야만인들을 우리만큼 나쁘게 만든 것 같네요.'
-볼테르-


두 사람이 즉각 싸운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단두대와 우유 역사




혁명기 유럽의 모습을 공평하게 그려내려면 10년 동안 혁명정부의 고귀한 사업들 대부분을 물 먹인 가장 큰 적은 혁명정부 그 스스로였단 걸 인정해야 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좌절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삼색 휘장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망명 귀족과 가톨릭의 재산을 헐값에 사들여 온갖 부정한 방법과 축재로 돈을 긁어모은 국민공회 의원들과 혁명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소비의 '느낌'을 이해한 자들이었는데 마치 한 세기 전 왕정시대의 화려한 장식을 떠올릴 정도로 고급스러운 그들의 옷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을 주고받았죠 
"저 정도로 쓸데없는 맵시를 부릴 줄아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부자일 거야!"

이는 상층부에만 국한된 건 아니어서 말단 관리와 사병까지 약탈과 합법적 약탈에 몰두했고 
세금징수원과 노상강도는 비슷한 모습과 비슷한 행동을 했죠
앙시앙 레짐을 경멸하고 프랑스와 삼색기를 사랑하는 저로써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외면하긴 어려운 사실이에요.

우린 당시 적지 않은 영국인들이 프랑스 혁명의 대의와 비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야만인들 보듯 그들에게 경멸과 동정의 눈빛을 보내지만 사실 혁명은 실제로 오해받기 딱 좋을 정도로 카오스였어요.


이처럼 공화국 사방에 쓰레기통의 쥐들처럼 넘쳐나던 부패 관리들과 의원들 사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가인 동시에 얼음처럼 냉정하고 눈처럼 순수한 사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로베스피에르에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이상을 철저히 이행하려 했던 사람인데 그는 목축업자들의 부당한 이득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이 우유를 먹지 못하는 것에 분개했어요

그리고 프랑스의 모든 아이들이 우유를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는 농민들에게 우윳값을 절반으로 낮추리 지시했죠

"우윳값을 내려라, 어기면 일단 단두대"





우윳값은 잠시 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얼마 뒤 다시 폭등했는데 농민들이 젖소들을 도축장에 팔아치웠기 때문이었죠

덕분에 잠시 소고기 값이 폭락했지만 잠시였어요

왜 젖소를 육우로 파느냐는 로베스피에르의 질문에 농민들은 건초값이 너무 비싸 우유를 팔아도 이득이 남지 않는다고 대답했는데 이에 로베스피에르는 건초 생산업자들에게 건초값을 반으로 낮추라 지시했어요.

이번에도 어기면 단두대

이 명령에 건초 업자들이 건초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해서 그들을 비난할수는 없어요

그들도 이어가야 할 생계가 있었고 가정이 있었으니까요

건초가 사라지자 안 그래도 급격하게 오르던 우윳값은 유례없이 폭등했고 프랑스의 어느 서민도 우유를 마실 수 없게 되었죠

우유가 암시장에서만 거래되며 10배 값으로 뛰었거든요

비슷한 일이 생필품 전반에서 벌어지자 서민들은 한 끼 빵을 먹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세느 강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은건 절망 밖에 없는 굶주린 빈민들이 자식과 함께 뛰어드는 일이 벌어졌어요

로베스피에르 정부가 무너진 건 단순한 정치 파벌싸움이나 우연 때문만은 아니었죠.





폭풍의 바다 - 덩케르크 하


2차대전 프랑스군의 작은 기적 - 퐁 상 루이 전투





2차대전 프랑스의 이야기는 치욕의 역사에요. 

당면한 위험 앞에서 프랑스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얼마나 우유 부단하고 겁쟁이처럼 굴었는지 살펴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심지어 그들에게 그만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해도] 

영국이 살아남아 분전할 수 있던 것이 가능했던 건 섬나라라는 지형적인 이점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영프군의 패배엔 운도 거대하게 작용했단 점 또한 사실이죠. 

두 나라의 군대는 생각보다 정예화된 집단이었고 훈련받은 군인으로써 어이없는 상황만 아니면 충분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어요.

그중 한 케이스가 오늘 소개할 퐁 상 루이 전투죠. 





언제나 지중해를 이탈리아의 내해로 만들고 싶던 과대망상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인에게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지도자였어요.

그가 추구한 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염원을 국가라는 전체 이익에 따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프로이센스러운 국가였는데 이탈리아인들은 쉽게 끓어오르지만 식는 것도 빠르단 건 몰랐던거 같아요.

게다가 인색한 프러시아의 군인 같던 두체의 군사적 식견은 야망에 따라주지 못했죠.

어찌 되었든 프랑스가 망해버렸단 소식을 듣자 두체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며 수저를 올리려 했는데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 뒤 대규모 군대를 프랑스 남부로 진격시켜 영토를 빼앗자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이탈리아는 30만의 대군을 출병시켰는데 이들은 전반적으로 보면 그다지 잘 준비된 원정은 아닐지 몰라도
[물론 독일군도 그 점에선 크게 낫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 죽어라 전쟁을 위해 준비를 했고 새롭고 광신적인 인종주의로 무장하고 있었죠. ]

알프스 산악 부대와 산 마르코 연대 같은 정예부대를 포함한 야심찬 원정부대였어요.

두체는 이탈리아인답게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와 이탈리아의 입장에선 나름 열심히 군대를 무장시키고 훈련시킨데다 30만 대군은 분명 엄청난 숫자고 프랑스군의 주력은 북부와 마지노선에 묶여 있었고 프랑스군 자체의 전투력도 형편없을 거라 예측했죠.
2천 년 전에도 로마인들은 골족 야만인들을 해치웠는데 이번이라 못할 건없잖아요?

물론 그게 오판이었단 걸 깨닫는 데는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8만 5천 명의 알프스 프랑스군과 30만의 이탈리아군의 격돌은 그 자체로 이탈리아에 군사적 재앙이었지만 그중 특기할 전투는 퐁 상 루이 전투에요.






어느 곳이나 도로망은 중요하지만 알프스 일대는 험준한 산악지대라 특별히 기동로가 중요했는데 다리와 교차로라면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거의 모든 시도에서 프랑스군에게 호된 맛을 보고 쓰라린 패배를 겪은 이탈리아는 요충지이자 기갑차량이 통과 가능한 다리가 있던 퐁 상 루이를 포병대와 기갑차량의 지원을 받는 5천 명의 병력을 투입해 빼앗으려 했는데 이들은 중화기를 풍부하게 보유한 부대였어요.

절망스럽게도 다리를 방어하던 프랑스군은 교차로 세관 옆에 위치한 작은 벙커 소속 수비병 9명이었는데 이들의 중화기라곤 1정의 레벨 기관총과 1문의 37mm 대전차 포가 전부로 나머진 모두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자랑스러운 정예 "산악 엽병 "이었지만 5천 명의 차량화 대군을 막아낸단 건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순식간에 끝나야 할 싸움은 그렇지 못했는데 9명의 프랑스 병이 다리를 굳건히 방어하며 이탈리아 군의 공세를 저지한 거예요.


벙커를 노리고 쏟아지는 이탈리아군의 포격 속에서 9명의 프랑스 병사들은 침착히 전투를 준비했는데 이탈리아 보병들이 다리를 건너자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쓰러지는 보병들을 제치고 장갑차량이 나타나자 37mm 포가 불을 뿜어 차량을 저지했죠.

치열하게 적을 막던 수비병들은 적의 숫자가 너무 많자 포병 지원을 요청했는데 프랑스 포병의 사격은 쏠 때마다 무언가 맞춘 반면 이탈리아 포병대의 포탄은 두꺼운 프랑스 벙커의 콘크리트 벽을 어쩌지 못했어요.

결국 긴 전투 동안 단 한대의 이탈리아 군 차량도 다리를 넘지 못했고 정작 전투는 프랑스 정부가 독일에 항복하자 자동으로 휴전이 되며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 하란 명령을 받아 9명의 수비병이 포로가 되는 것으로 끝났죠. 그에 비해 이탈리아 군의 피해는 사망자 200명 이상에 부상자도 600명이 넘었어요.

두체는 용맹한 이탈리아군이 남부 프랑스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선전했지만 실상은 독일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진 것에 가까웠죠.

수천의 적을 맞아 9명의 프랑스 병사들은 이렇게 외치면서 싸우지 않았을까요

"On ne passe pas"
(저들은 지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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