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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화승총에서 수발총으로


매치락을 사용하는 예니체리 - 1657년 이전 



우리는 흔히 혁신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떨어져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점진적으로 벌어지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갑작스레 세상이 바뀐 것처럼 보일 뿐이죠.

최초의 상업적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가 삐삐(호출기)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데 14년이 걸렸고,

증기선 SS 사바나가 1819년 최초로 대양을 건넌 이후 쾌속 범선을 바다에서 몰아내는데 4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죠.
[왜 40년이냐 하면 범선이 확실히 몰락한 게 수에즈 운하의 개통이기 때문이에요 운하를 통과 못하는 쾌속 범선은 아주 빠르게 사라져 버렸고 석탄 그을음이 천박하다 여기던 범선 선장들은 자존심을 숙이고 기선 선장들 아래로 들어가거나 실업자가 되어야 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 양상은 과거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편인데 1620년 등장한 수발총이 유럽에서 화승총을 몰아내는 데는 80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거의 한 세기죠.




저 옛날 핸드고너 시절부터 총(?)은 노끈이나 심지에 불을 붙여 사용했지만 방아쇠를 당겨 총을 발사하는 진정한 의미의 화승총은 15세기 중반에 처음 등장했어요.

16세기 오토만 화승총병을 그린 삽화

첫 고객은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들이었고 이후 화승총은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며 메인스트림이 되었는데 뭐든 쓰다 보면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고 오래된 화승총을 대체하기 위해 많은 도전자들이 등장했어요.

16세기부터 휠락, 스냅헌스, 도그락, 발틱락과 같이 잡다한 젊은 피들이 구닥다리 매치락을 밀어내고 왕좌에 오르려 경쟁했죠.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채 세기말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점차 사라져 갔고 차세대 주자의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플린트락이었어요.

한마디로 스파크를 내서 화약을 점화시켜 납구슬을 쏘아보내는 데는 플린트 락이 가장 뛰어났단 뜻이었죠.

하지만 도전자를 뽑는 싸움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정작 교체 당사자인 매치락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그는 과연 디펜딩 챔피언이었죠.

세대교체 싸움은 생각만큼 일방적이지 않았거든요.

매치락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신무기를 비싸기만 하고 바보 같은 무기라 비웃곤 했어요. 마치 19세기 중반 쾌속 범선 선장이 증기선 선장을 보고 비웃었듯!



실제로 플린트락의 등장 이후에도 유럽에서 매치락은 17세기 내내 적지 않은 양이 쓰였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화승총(매치락)은 초석을 바른 노끈에 불을 붙여서 화약 접시에 박아 납총알을 발사하는 간단한 구조의 총기에요.

15세기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의 매치락 아퀘부스 

17세기 중반의 후기형 매치락 머스킷들과 맨 아래 휠락 머스킷..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전열 보병 머스킷과 모양이 비슷해지죠.



화승총은 움직이는 부품이 적은 데다 구조가 단순해서 값이 싸고 관리도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전이 더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데다 빛과 냄새 때문에 매복에 불리하며 거추장스러운 불씨의 유지가 곤란하다는 적지 않은 단점 또한 가지고 있었어요. 이 때문에 급작스러운 돌발상황에 취약했죠. [전투상황 에선 그런일이 자주 일어나곤 하죠]

여기서 끝이면 모르겠지만 또 다른 문제는 화승총이 불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는데 화약을 잔뜩 쌓아두고 있는 포병대에선 종종 사고로 포대 전체가 날아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죠. [당시 수많은 직업 포병이 적이 아닌 자신의 대포 때문에 비명횡사하곤 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바람이나 비에 극히 취약하단 점이었는데 바람이 불거나 적은 양의 비로도 총이 자주 무용지물이 되곤 했어요. 

수발총은 이런 면에서 상당한 혁신을 이루었는데 일단 바람 때문에 불씨가 꺼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폭우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비가 와도 사격이 가능했어요.
만약 정 비가 걱정된다면 격발 기구와 화약 덮개 위에 빠르고 쉽게 제거 가능한 덮개를 덮어두었다가 필요시에 바로 벗기고 사격할 수 있었죠.

17세기 후반 최후기형 매치락과 그 아래 초창기 플린트락들. 모양이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어요






거기다 군대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집단이고 화승총에 익숙해있던 유럽의 군대들은 비싼 신무기를 도입하는데 크게 속도를 내지 않았죠. [한두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의 무장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애초에 단시간 내에 끝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고.]
유명한 천재 보방이 최초의 수발총 정예부대를 조직한 게 1670년이었고

영국이 뒤를 따른 게 1685년이었어요.
최초의 등장부터 50년, 65년이 지나서야 서유럽 주요 국가들에 완편부대가 탄생한 거죠.


하지만 대양 건너 북미에선 사정이 조금 달랐는데 이는 유럽과 다른 전쟁의 양상+사냥 때문이었어요.
대규모 회전보단 소규모 접전 특히 경보병 간의 전투가 흔했던 북미 대륙에선 총기 하나하나의 성능이 더 중요했고 수발총은 더 빠른 장전과 조준, 더 높은 명중률, 외부 환경으로 부터 더 높은 신뢰성이란 이점이 있었어요.
플린트 락은 영국, 프랑스, 원주민을 가리지 않고 자주 벌였던 매복전에 적합한 물건이기도 했고, 군대를 매복시키기 좋단 점은 사냥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죠.


북미의 영국 식민지에선 영국(그리고 대륙의 다른 모든 국가들)보다 수발총이 빠르게 화승총을 몰아냈는데 그 예로 이미 1645년 플리머스 지방 집회에선 이미 화승총이 마을을 지키는 무기로써 쓸모가 없다 판단했고 1677년에 이르면 플리머스 식민지 전역에서 화승총의 퇴출을 법제화했어요. 구닥다리니까 쓰지 마

심지어 백인들뿐 아니라 인디언들도 수발총으로 무장했는데 식민지 법은 원주민들에게 총기를 판매하거나 건네주는 걸 엄격히 금했지만 적지 않은 화승총과 수발총이 원주민들에게 판매되었고 원주민들은 특히 수발총을 선호했죠.

상대가 야생동물이든 적대 부족이든 백인이든 매복해서 해치우는데 훨씬 유리했거든요.


하지만 북미인들에게도 수발총의 유지비는 골치거리였고 이와 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내려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수발총이 화승총보다 유지비가 많이 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품 숫자가 많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싯돌이었어요.
부싯돌은 노끈보다 더 비싼 물건이었죠.
다음에 계속



덧글

  • 스카라드 2019/09/11 18:48 #

    그러고 보면 수발총이 중세부터 사용된 화승총을 전선에서 퇴역시키고 교체할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캡락 = 뇌전식 소총은 의외로 시간이 덜 걸렸는 것 같아요. 나폴레옹 전쟁 끝나고 나서부터인가 말기부터인가 사용되더. 정작 볼트액션이 등장하면서 신속히 증발한 것 같네요. 그래도 30년은 걸렸나?


    ps. 그저 대체역사적인 망상인데 수발총이야말로 지중해 로마 말기부터 중세시대 초중반에 활약해야 할 총이 아니었나 싶어요.
  • 알파캣 2019/09/11 16:31 #

    퍼커션 캡이 1826년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1871년쯤부터 서구의 주류에서 쫓겨났으니 45년쯤 쓰였네요. 반자동 소총이 볼트 액션과 자동소총 사이에 껴서 빠르게 사라진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될 것 같아요.
  • 파파라치 2019/09/11 10:55 #

    군대에서 돌발 상황에 취약하다는 것은 현대의 우리가 보기엔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원래 전쟁 상황이란게 돌발의 연속인지라), 17~8세기를 지배한 군사 사상은 통제를 극대화하고 돌발 상황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고 하니 (출처 : 유발 하라리 <극한의 경험>) 적어도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큰 문제점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알파캣 2019/09/11 15:56 #

    덕분에 북미와 유럽에서 보급 속도가 차이 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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