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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 이야기 2 : 수발총과 부싯돌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분야에 대해 의외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이건 역덕들이 아니라 실제 역사 학자들이 논문에서 지적하는 부분이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초기 수발총 산업에 대한 기록 문서는 극히 드문 편이에요. 

산업 자체가 작았고, 그나마 있는 종사자들은 상세한 기록을 남기기보단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을 중시했으며 그나마 남은 극소수의 문서들도 시간이 지나며 분실되거나 파기되는 일이 흔했죠. 
사업 관련 문서는 당사자들끼리만 알아보면 되었고 그나마 남기지 않고 구두로 끝내는 경우도 많았어요. 
당시 수발총 산업은 산업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작고 귀여운 규모였고 종사자들도 파트타임 업자= 소규모 제작이었고 심지어 이들 중 상당수가 문맹이었죠. 

물론 SNS가 없던 시기라 하루 일과에 대한 일기를 정성껏 쓰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어서 종종 후대에 좋은 사료가 되는 케이스가 되곤 하지만, 불행히도 일기장에 시시콜콜 업무내용을 적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수발 총 생산자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거기다 제대로 된 문서가 남았다 하더라도 누가 수발총 부품 관련 장부나 석공 일기장을 가보로 여기거나 "이건 300년쯤 지나 면 특이한 걸 좋아하는 학자들에게 귀중한 사료가 될 거야 "라면서 보관했겠어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17세기 동안 수발총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며 소모품의 소요도 함께 늘어났단 것이고, 그 소모품은 마로 부싯돌이었단 거에요.










호빵엔 팥이

삼계탕엔 닭이

수발총엔 부싯돌이 빠지면 안 되죠.

조금씩 오르던 유럽의 수발총 보급률은 세기가 지나면서 수직 상승했는데 이때 비로소 수발총용 부싯돌을 제작하는 전문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시장이 있는 곳에 기업들이 생겨나고 기업이 생기면 프로정신이 생겨나죠.

반대로 말하자면 17세기 후반 이전의 수발총용 부싯돌 생산은 불규칙적이고 소규모에 엉성했단 뜻이었죠.

17세기 후반 부싯돌 산업에 뛰어든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예전부터 오랫동안 휠락, 스냅헌스 심지어 화승총을 제작하며 기계제작, 총기 제작에 일가견이 있던 프로들이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아마추어들이었어요.
여기서 유럽과 북미의 차이가 또 나뉘었죠.

일단 이 산업의 선두주자는 프랑스였는데 프랑스 부싯돌 산업에 대한 최초의 기록 문서는 1643년의 것이에요.
비슷한 시기의 고고학적 유물들도 문서를 뒷받침해주고 있죠.
당시 프랑스 부싯돌은 칼날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칼날의 뒷부분을 둥글게 가공해 D 자 모양이 되었죠.

힐 부분이 뒤편 엣지 부분이 충돌하는 머리 부분.



영국의 경우에는 라임 모르타르(Lime mortar) 제작의 부산물로 부싯돌이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모르타르는 박격포가 아니라 벽돌 작업을 할 때 쓰는 건축용 접착제를 뜻해요.
[사실 프랑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에요. 부싯돌이 많이 나올만한 채석장이 좋은 공급원이었을 거라 추측 가능하죠]

라임 모르타르는 라임(석회)와 모래를 혼합한 가루에 물을 넣어 끈덕지게 만든 물체였는데 내구도가 떨어져서 지금은 시멘트 모르타르에 밀려 잘 쓰이지 않지만 석회가 넘쳐나는 영국에선 1930년대 심지어 그 이후에도 쓰이곤 했죠. [비단 영국뿐 아니라 유럽 자체가 석회가 풍부한 편이에요 덕분에 수질은 별로였고 대신 맥주 산업이 번창했어요.]


저게 다 하얀 석회 백악..


여하튼 저 모르타르를 만들려면 석회암을 채취해야 하는데 채석 과정에서 부산물로 석영이 나왔고 이는 부싯돌의 좋은 재료였어요.
석회 지대는 강변을 따라 많이 생성되었고 강은 운송에도 편했기에 영국의 부싯돌 제작 공장들은 템스 강변을 따라 생성되었는데 이후엔 솔즈베리의 공단으로 명맥이 이어지나 싶더니 결국 18세기에 서포크에서 부싯돌 산업을 완전히 장악했죠.

솔즈베리 스테이크..



서퍽(Suffolk)은 숙련된 제조공들(Gun-flint knappers)을 많이 두어 영국 최고 품질의 부싯돌생산지로 이름 높았는데 7년 전쟁, 미국 독립전쟁, 나폴레옹전쟁까지도 대량 생산을 했어요. 공장 중 가장 유명한 건 비교적 늦은 1790년에 필립 헤이워드가 10만개의 부싯돌 주문을 받고 설립한 브랜든 건플린트 컴퍼니 였는데,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동안 버밍엄의 베이커 라이플 생산자들에게 36만개의 부싯돌을 공급했죠. 이들이 아니었다면 소설 샤프스도 없었을거에요.
 서퍽의 업자 들은 값을 높게 받기 위해 철저히 담합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초반 에 자신들이 프랑스로 부터 들여온 생산기법이 너무도 효율적이라 이전의 3배 물량을 쏟아지기 시작했고 부싯돌값은 급격히 떨어졌죠.
아무리 업자들이 담합을 하려 해도 시장을 이길수는 없었어요.

프랑스식 공정은 단순히 생산량이 많은게 다가 아니라 더 적은 부품과 제조공을 필요로 했는데 그 예로 크림전쟁 당시 서퍽의 공장중 한 곳은 오스만 제국이 주문한 수백만개의 부싯돌을 단 1주일만에 홀로 생산해 버렸어요.

(A.J Forrest "Masters of Flint") of a Brandon Flint shop in 1876


거기다 더 진보한 퍼커션 캡이 등장하자 부싯돌의 생산량은 많아졌는데 수요는 급격히 줄었고 생존에 위협을 느낀 서퍽 장인들은 실력을 살려 각종 장식품이나 공예품, 모조 선사시대 물품 제작으로 업종을 바꾸었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2세기 뒤 이야기였고 16세기 말 영국의 공장들은 폭증하는 부싯돌 수요량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결국 영국은 체면을 구기며 프랑스에게서 부싯돌을 수입해야 했죠.


당시 영국의 부싯돌들. 검고 사각형인 것은 영국제, 호박색에 둥근것은 프랑스산





당시 영국의 부싯돌은 칼날처럼 다듬기보단 사각 모양에 가까웠는데 제작에 손이 덜 가는 디자인이었죠. 

서유럽의 두 주요 국가에 플린트 락 부싯돌 생산 공장이 첫 언급된 게 1640년대지만 진정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건 1700년대 이후였어요.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 북미에선 훨씬 빠른 속도로 플린트락이 보급되었지만 여기도 대량 생산 시설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죠.



- 다음에 계속

덧글

  • 이글 2019/09/12 20:38 #

    연휴에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 알파캣 2019/09/13 02:49 #

    즐거운 추석 되세요
  • 타누키 2019/09/12 21:30 #

    1편을 보며 수발총이 그래서 뭐지?!?했었는데 저거군요~
    짝퉁이겠지만 집에 하나 굴러다니는....ㅎㅎ
  • 알파캣 2019/09/13 02:49 #

    와우!
  • KAZAMA 2019/09/13 15:15 #

    영국서 어린시절 레드코트 행사할적에 만져본적이 있었습니다만 디게 맨들맨들하던데 살짝만 마찰이 생겨도 불똥이 튀던거에 놀랐었죠
  • 알파캣 2019/09/14 02:30 #

    멋진 경험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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